버들. 나무. 인생.
아이들은 놀기위해 세상에 온다 본문
아이들은 놀기위해 세상에 온다 / 편해문 / 소나무 출판사
"요새 애들 못씬다". 내가 어릴적에도 들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들었고, 군에 있을 때도 들었으며 결혼 한 후에 딸 둘을 둔 현재도 듣고 있는 말이다. 어디에 못쓴다는 말인지 가늠할 순 없지만 여하튼 물리적인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에게 흔히 쓰는 말인데, 맘에 드는 구석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겠고 예를 갖추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육체적 심리적 강도가 자기들보다 떨이진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케이. 인정한다. 주로 위의 말을 나에게 하시는 분들은 내 삼촌 뻘이나 아버지 뻘이 되는 분들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는 변명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당신께서 살아오신 모진 세월 속의 삶의 힘듦을 이백 퍼센트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당신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살아가고 살아갈 세상을 한 번 보시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물론 그 분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진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은 아니었지만 꽃 피는 들판이었다. 그 빌어먹을 새마을 운동으로 주택의 지붕은 스레트로 바꼈고 달구지가 오가던 좁은 길은 비포장 대로로 바꼈다. 털털대며 지나가던 경운기 엔진을 붙인 4륜 트럭이 경작지 구획으로 보기 좋게 사각형으로 잘라놓은 논밭에 객토를 한다고 온 마을을 흙 먼지로 덮었었다. 조랑말이 몰고 가던 달구지들도 한 몫을 할 때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논과 밭을 연결하는 임도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고 마을을 가로 지르는 비포장 대로는 시커먼 아스팔트로 멋지게 포장되었다. 젊은 사람은 명절에만 볼 수 있는 지경이 되었고, 아버지, 작은 아버지, 고모, 형 그리고 나의 모교인 초등학교는 폐교 직전까지 몰렸다. 조그만 읍내에서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시골에도 30년 만에 모습이 이렇게 바뀌어 버렸다.
어릴적에는 이 책의 저자 편해문 선생이 말씀하시듯이 온 들판, 도랑과 강이 놀이를 넘어 삶의 일부였으며 그 자체가 놀이의 공간이었다. 마을 어디를 둘어보아도 차는 없었고 맘껏 뛰어 놀아도 사고라고는 날만한 곳이 없었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우리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놀이를 바꿔가면서 놀았다. 아주 꼬마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다소의 다툼은 있었지만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속시원히 놀았다. 말 그대로 거칠것이 없이 놀았다. 시끄럽다고 다그치는 어른들도 없었고 조심하라고 걱정하는 어른들도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마을의 일부였고 의례히 애들은 몰면서 크는거지 하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봐주시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내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를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그런 세상 속으로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가자고 하는 내용으로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인도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고 오히려 아주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다고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고 있다. 이미 희망이 사라진 제도권의 교육 외에 사교육은 더 큰 압력으로 아이들을 누르고 있다. 피할 곳과 쉴 곳을 마련하지 않고 긴장과 압력을 높이면 터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양이도 쥐를 몰 때, 하나의 구멍은 남겨 놓고 몰아 간다. 이미 10대 초반부터 희망이 뭔 지도 모를 나이부터 희망을 죽여 버린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놀 틈과 놀 터를 내어주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인생은 너무 피곤하구나 라는 감정을 너무 이른 나이에 선물해버린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놀게 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제 3자적 관점에서 놀이를 게임화시켜서는 안된다고 설파한다. 우선 틈과 터를 내어주고 구지 "놀아라"라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제 어느 곳에서나 같이 어울려서 놀아가는 어린 시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그 자체가 아이들의 인생인 것이다.
아이들이 좀 더 아이들스럽고 재밌게 놀 수 있는 틈과 터 그리고 같이 놀아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의 책 선물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이 책의 저자인 편해문 선생님은 참 멋있는 어른일 것이라 생각된다.
2015.10.10. 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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