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버들 독서 이야기/녹색평론 (22)
버들. 나무. 인생.

녹색평론 173호를 끝으로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의 글을 접할 수 없게 되었다. 먼 하늘로 영면하셨다.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라는 글을 허탈한 심정으로 읽을 뿐이다. 표지에 나오는 사진은 코로나 19 지원을 위해 이탈리아에 도착한 쿠바 의료진의 사진이다. 의료 국제 지원을 적극적으로 나서는 쿠바는 외화 벌이라는 수단도 물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연대의 원칙에 입각한 실천이라는 글이 마음을 훅 당긴다. 그리고 누구나 읽었으면 싶은 글은 "스크린의 배우 - 인터넷 접속의 진정한 비용"이라는 글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손 끝의 비용이 얼마인가를 알리는 글이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시대에 인터넷이 돌아갈 수 있는 기반 근대 문명이 어떤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가를 일깨운다. 현실에 보이지 않는 에..

녹색평론 172호 6.25 70주년 인 어제,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접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생태문명을 수십 년 간 외치셨던 분이 지구 생명이 백척간두에 놓인 시점에 작고하시니 지구의 생명이 다한 건가?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가 지구의 모습을 이리 형편없게 만들어 놓았으니 한탄과 한숨도 사치인가? 지구와 사람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 사회가 필요한 정치적인 도구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숙의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하셨었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밑바탕부터 개혁하려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풀뿌리와 시민단체가 주체가 된 시민의회를 제도..

녹색평론 171호이다. COVID 19의 팬데믹으로 전 지구가 혼란하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희미한 듯 어슴프레 보이는 듯한 종점이 저기 있고 다와 간다고 안심하는 사이에 또 다시 대혼란 초기 상태에 있는 듯 하다. 밤새도록 술 먹고 춤을 추던, 노래를 부르던 알바가 아니나 사회성에 대한 인지를 좀 했으면 좋겠고, 책임에 대한 각성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준비와 대비를 하며 나 하나가 아니라 나 하나 때문에라는 인식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 늘 늦어지는 게 만성이 되어서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는 독후감?이다. 독후감이라기보다 그냥 이번 두 달도 녹평을 읽었다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방책같은 핑계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뿌듯해지는 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번 호에서 눈길을 끄는 글..

녹색평론 제 170호 책 표지의 굵직한 현안들이 도쿄 시민 한 명이 겪은 방사능 피복에 관한 얘기로 빨려 들어가버리고 기억에 남는 얘기가 없다. 사실 2달 전에 읽어 기억에 남는 내용도 별로 없다. 도쿄에 사는 어느 분이 딸아이가 무기력하게 변해가는 걸 지켜볼 수 없어서 100KM 가까이 떨어진 외가집에 애들 데려다 놨더니 불과 몇 개월만에 원기를 회복하고 생기 발랄하게 되더라는 얘기다. 이는 짐작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후쿠시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도쿄에 사는 평범한 시민의 얘기다. 이는 이미 도쿄도 안전하지 못한 곳이라는 것이다. 도쿄는 일본의 심장이다. 일본은 끝났다. 올림픽은 죽음의 땅에서 썩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갖은 몸부림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생명이 끝나기 전에 일본의 썩은 권..

녹색평론 제169호. 벌써 녹색평론을 구독한 지 5년 째에 접어든다. 가로 늦게 발견하게 되어 어느 새 매니아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의 핵으로 접근해서 근본을 치유하고 고쳐야 한다는 일설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지구라는 생명체가 온전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핵심을 찌르는 성찰과 사유. 그 날카로움과 근본을 향한 돌진에 매료된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외쳐봐야 변하지 않는다는 자포자기와 허무를 넘어 근대문명의 해체를 위해 적극적인 거부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목차에만 보아도 곳곳에서 닥치는 생명을 위협하는 기계문명의 꽃들이 판을 바꾸어가면서 자본가들에게 달콤한 권력을 끝도 없이 선사한다. 무엇이 필요하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답은 명쾌하지만, 세우지 못해서 ..

녹색평론 168호 근대의 문명이 파국으로 치닫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현재. 지속되는 기후 위기의 지구와 인류를 구할 길은 무엇인지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문장들이다. 그리고 우파에서 극우로 극우에서 미치광이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일본의 정치 상황. 근대 문명이 효율과 성장, 소유와 풍요를 강요하는 사이 정작 그 중심을 잃어버린 인류. 인간 이외에는 심지어 상위층의 인간 외에는 모든 것을 배척하는 야만. 자멸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응축된 과학기술. 되돌릴 수 없는 방사능 오염. 지구 파괴의 마지노선, 1.5℃ 이하로 막아야 하는 지구온도. 무엇하나 근대 문명과 그것을 지탱하는 자본주의가 파괴되고 인간의 근본을 생각하는 생태주의와 농본주의가 도래하지 않으면 희망은 그저 노래 속에나 나오는 추상일 뿐이다...

이번 호는 스웨덴의 크레타 툰베리의 글 "행동을 해야 희망이 찾아옵니다" 중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갈음하려고 한다. 20년 내에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똑똑한 인간의 종말을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종말로 치닫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제가 학교에 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공부를 해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후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깨어나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제가 더이상 있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까? 아무도 그 미래를 구하기 위해서 아무런 일도 하고 있지 않는데도요? 그리고 바로 그 학교에서 배우는 가장 훌륭한 과학이 알려주는..

기말시험 기간이라 어떻게 읽었는 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 중에 표지 모델로 나오는 반다나 시바 선생의 글과 김종철 선생님의 서언이 짧막하게 기억 난다. 세계와 자연을 자신들의 돈으로 지배하려는 1%에 맞서서 지혜롭게 싸워나가야 하며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인도의 생태운동가 반다나 시바. 그녀가 소개하는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라 불리는 거부들. 그들과 그 회사들이 어떻게 부를 증식해왔는 지 소개하는 부분에서 탄식과 절망이 배어나오지만 그녀가 전하는 희망의 메세지도 귀 기울여 들을만 하다. 또한, 지구 기후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얼어 붙은 땅과 빙하가 현 속도로 녹아내릴 경우 지구는 20년 내에 온통 찜통이 될 수도 있다는 지구 과학자들의 발표가 섬뜩하게 만든다. 무엇을 해야 하나... 넋 놓고 ..

녹평 165호. 뒤늦게 읽은 후 느낌을 몇자 끄적거려본다. 이번 호에서 특별히 나의 눈을 끈 것은 '내 인생의 책(10)' 부분에서 최성각 작가의 "'폴라니의 식탁'을 생각한다"이다. 칼 폴라니라는 분은 인터넷 방송 어딘가에서 1900년대를 대표하는 진보적인 경제학자라고 얼핏 들은 것이 기억난다. 이 글을 쓴 최성각 작가는 어느 고요한 두메 산골에 조용히 살아가는 시인이신 것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진 않았다. 어느 날, 작가께서 한국작가회의 회보를 받는다. 그 회보에 실린 '예술원에 대한 단상'이라는 기고문을 읽고 강한 불쾌감을 느낀다. 내용인즉, 그 예술원 회원이 되기도 힘든데 일단 되면 월200만원의 돈을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울화가 치미신 듯, 무릇 작가라 함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