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 나무. 인생.
굿 워크 E.F 슈마허 본문
<굿 워크> 저자 : E.F. 슈마허 역자 : 박혜영 출판사 : 느린걸음
변홍철 선생님의 책 "시와 공화국"에 소개된 책, 굿 워크. 스마트 폰에 읽을거리로 기록해두었다가 대구 안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다. 책의 서두에서부터 번역자 박혜영 선생님의 옮긴이의 글까지 모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위한 산업기술이고 문명인가 ?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하는 책이다.
1975년 현재 인간의 노동을 노예스럽고 무가치하게 만드는 산업주의 체제가 과연 옳은 방향인가에 대해 철학적, 형이상학적, 경제학적 접근과 분석을 통해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사이비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는 영성적 성찰을 하는 계기이기도 했고, 오로지 기술적 성장을 하고 싶었던 엔지니어로서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의 발전 방안을 고민해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1975년 현재 현대 산업주의 체제에서 인간 존중을 회복하는 길은 자연과 인류의 전통적 지혜와 가치를 활용하여 좋은 노동을 하는 것이다. 좋은 노동은 전 인류가 쌓아온 전통적 지혜와 가치 위에 적정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적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노동을 말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 노동이며 노동을 통하여 가치를 인식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자아 해방을 할 수 있는 지고지순한 노동을 의미한다. 현대 산업주의 사회는 거대증, 복잡성, 자본집약형의 성장을 위한 성장을 목표로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와 같다. 인간과 자연과 전통의 가치가 철저히 배제된 가치 상실의 시대이다.
슈마허는 현대 문명이 이렇게 위험한 여행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체제"나 "사상"이 아니라 "기술"이라 보았다. 과학으로 잉태된 기술은 한계를 모르고 성장하고 철지난 기술은 바로 잊혀지고 만다. 오로지 기술의 성장과 성장된 기술만이 가치로 인정받는 시대에 기술을 따라가기도 급급한 노동은 예전 중세 시절 노예의 노동으로 가치가 폄하되고 문명 유지를 위한 기계 부품처럼 취급 받는 시대로 전락하고 있다고 보았다. 2015년 현재와 비교하였을 때 1975년의 기술 수준은 미개한 수준으로 여겨질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인식의 함정이 있다고 본 것 같다. 예전부터 쌓아온 인류의 기술들은 나라별, 지역별, 수준별, 규모별로 적시적소에 적용할 수 있는 적정한 기술 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과학의 관점을 자원의 보고로서가 아니라 우주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지난 세월 인류가 쌓아온 과학 기술을 철지났다고 버리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소규모의 가난한 지역 사회를 위해 적정 기술(중간 기술)로 발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목표와 목적없는 산업주의의 배타적 성장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노동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자아 실현과 궁극적으로 자아 해방 되는 단계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기 위해서 형이상학, 철학적, 종교적 성찰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릇된 방향의 형이상학에 대해 다잡을 수 있는 교육과 과학의 전위에 있는 종교적 성찰의 기반위에 적정 기술(중간 기술)을 활용하여 가치 있는 노동을 통해 비로소 현대 문명의 인간성 회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이 너무 맘에 들어 2번 반복하여 읽었다.
근데 잘 정리가 안된다. 경제학자라기보다 종교철학자 같은 느낌을 받는다. 굉장한 내공을 느낀다.
슈마허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내용 중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례는 아래와 같다.
2008.06-2013.10까지 대구 소재 OO전자 협력업체에 몸을 담았었다. 3G 모델부터 스마트 폰 모델까지 다양하게 과제를 진행했었다. 하나의 파생 모델을 출시하기까지 계약 기간은 통상 3-4개월 정도다. 본격적으로 과제가 시작되면 새벽 근무는 통상적으로 진행되었다. 3달 정도 새벽 2-3시경에 퇴근, 쉼 없는 주말 그 정도 되면 몸은 처지고 입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난다. 몸과 마음이 불편을 넘어 불쾌해 진다. 이것이 바로 가치없는 노동, 노예 노동의 전형일 것이다. 물리적 근무시간만으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을지 모르나, 보통 그 정도 근무를 하게되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일지라도 질리게 마련이다. 더우기 원청업체에 파견근무일 경우는 더하다. 슈마허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무가치한 노동과 노예 노동을 몸소 겪어 본 듯 하다.
나는 대학원에서 컴퓨터 네트워크를 전공했다. 기술을 전공한 자는 사람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 기술이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논리에 매몰된다. 왜 ? 먹고 살려고...
이 생존 논리에 매몰되어 사람과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아몰랑이다. 몇 년전 이명박 정권 시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하고 있는 기술과 현재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IT 기술에 대해 잠시 고민해보았다. IT 는 전반적으로 독자적인 산업을 형성하지 못했다. 소위 잘나가는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그 말은 IT 산업은 타 산업의 지원 산업이라는 의미다. 타 산업을 지원한다는 의미는 거의 자본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생존 논리와 성장 논리가 다른 모든 논리를 압도한다. 얌전한 글로 표현했지만 조금 더 경박하게 표현하자면 돈을 좀 더 벌고 새는 돈을 줄이기 위해 타 산업에서 IT 산업을 활용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생각은 돈을 좀 더 벌고 새는 돈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IT 가 "사람" 짤라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제일주의를 위해 인간에게서 신성한 노동을 강탈하는 야만스런 기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예를 들어, 고속도로 톨게이트 하이패스 도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읽은 사람들, 공장이 자동화 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등. 이 또한 기술이 노동을 말살하는 하나의 예라고 생각한다.
2015.07.16. 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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