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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독서 이야기

사쿠라진다

버들아 2019. 10. 14. 00:21

기묘한 일본 - 고질라의 나라 

시라이 사토시 X 우치다 다쓰루

정선태 옮김

우주소년 출판사


이 책은 시라이 사토시와 우치다 다쓰루라는 일본의 진보 지식인의 대담을 엮은 대담집이다. 번역은 김용민 브리핑에 고정 출연하시는 국민대 정선태 교수님이 하였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도 못하고 역사적, 정서적 피해의식만 가지다 보니 일본에 관한 책은 잘 읽혀지지 않는 편이다. 물론 읽을 의지도 박약하다.  그러나 늘 궁금한 점은 있었다. 왜 저들은 사실을 속이려고 할까? 정말 자신들이 한 짓을 안했다고 믿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니 궁금했던 부분들이 조금 해소가 되는 듯 하다.

두 사람의 대담을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일본은 오늘날 까지 '영속 패전 체제'에 머무르고 있다.  영속 패전 체제를 떠 받치던 요인이 이미 사라졌음에도 일본은 대미 종속을 강화하고 있으며 점점 자멸을 향해 치달아 가고 있다.  패전의 부인으로 시작해서 지난 역사를 '부인'이라는 단어로 일관한 전후 70년 간의 일본에 대해 냉철한 비판으로 경종을 올린다.

 

우선 책 속에서 말하는 '영속패전론'을 요약해보자. 
2차 세계 대전 패전이후 일본은 '패전의 부인'을 계속한다. 전쟁을 이끌던 전범들이 계속 권력자의 자리에 머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전범들이 전후에도 권력을 틀어 쥐고 있을 수 있게 되었느냐면, 미국이 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는 동서로 소련과 미국으로 냉전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을 자유 진영에 붙들어 두어야 했다.  그러면 일본을 누구에게 맡겨야 안심할 수 있을 것인가? 좌익 세력 제외, 아나키스트 세력 제외시키면 결국 남은 세력은 전쟁 전의 보수 세력 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냉전 속 북태평양 지역의 좌경화를 막기 위해 미국은 일본을 기존 전범들에게 맡기게 된다. 해서 일본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한 바 없음(일본을 패전으로 이끈 무리들이 계속해서 지배세력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  보수 세력이 미국의 승인 하에 지배세력으로 계속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감히 대항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영속패전론의 하나의 기둥 '냉전 체제' 즉 미국 그늘 속의 '패전의 부인'이다. 

일본은 내적으로 계속 패전을 부인해 왔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아시아 나라에 냉전 구조를 이용해서 패전한 사실을 감출는 방법이었다.  미국은 일본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또한 막강한 경제력으로 짖눌러 불만이나 이의를 표출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1990년 전후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로 냉전 시대때 만큼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중국의 성장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속패전론의 다른 기둥 냉전 체제 후의 주변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다. 

냉전 구조 속의 미국이라는 배후, 한국, 베트남 전쟁을 통해 성장한 막강한 경제력.  이 두 가지 기둥이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성장함으로 해서 '영속 패전'체제의 기둥이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영속 패전 체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핵심 키워드는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 이 단어이자 맥락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전후 70년 동안의 역사는 계속되는 패전의 부인으로 점철되어왔다. 결과 이상하게 생겨버린 정체모를 고질라가 탄생해버렸다. 일본의 아이덴티티가 기묘하게 흘러가버렸다는 것이다.  기묘한 상황이 나도 모르게 진행되고, 이대로 가다가는 출구가 보이질 않는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기묘한 일본인들의 속성, 즉 내적인 파괴본능.  이것이 더욱 고질라라는 괴물을 더 괴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재의 일본 정치인들을 보면 한국의 이상한 정당처럼 극우로 치닫고 있는 듯이 보인다.  70년간 가짜로 살아와서 본 모습이 어떠했는지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기묘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반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버린 민족처럼.

왜 과거에 반성이 없고, 과거를 숨기려하고, 지워버리려고 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은 다소 해소되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생각난다.  이해는 되는데 용서가 안 된다.  또한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2019. 10. 14. 강골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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