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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독서 이야기

나도 땅이었으면 좋겠다

버들아 2019. 7. 4. 11:20

 

 


이렇게 게을러도 되나 싶다. 책을 손에 쥔 지 6개월 이상이 지났고 읽은 지 한 달이 넘었건만, 아직 소감을 다 써내려가지 못했다.  주체없이 이리저리 생계로 뛰어다니다 보니, 생계도 민망하고 여가 시간도 짤이 없다.  내려가는 자존감을 더 이상 내버려두면 안되겠기에 뭐라도 끄적여 본다.


지구가 총체적인 난국이다. 지구를 둘러싼 모든 환경 조건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한 지 몇 세기. 이 몇 세기 동안 지구가 견디는 힘, 자정의 힘이 급격히 쇠락하고 있는 듯 하다. 

빠르게 녹고 있는 그린란드의 빙하. 영구히 얼어 붙은 땅인 줄 알았던 시베리아 동토.
몇 방울만 마셔도 수 분내에 목숨을 잃는 맹독성의 농약으로 찌든 대지.
미세먼지로 뒤덮힌 하늘은 인간이 숨쉬기에도 버거운 곳이 되어 버렸다. 
이런 환경을 인간은 또다른 기계로 극복하려고 하는 모양새이다. 
온갖 약품과 보조 장비들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남미의 출렁이는 플라스틱 바다는 보는 사람마다 충격을 주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충격은 곧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미 모든 기계 문명의 이기들이 생활전반을 장악해버린 지 오래이다. 

그러나 환경 따위야 어쨓든 돈만 챙기면 되고, 자기들만 안전하면 된다는 깨닫지 못하는 자본 권력을 장악한 자들.   기층 민중인 일선의 노동자들은 자본 권력이 놓은 노동자 갈라치기의 덫인 비정규직이라는 틀에 갖혀 버렸다.   그 틀안에서 비정규직 민중은 기계 문명의 이기를 목숨 걸고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기계 문명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불편함을 견디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허무맹랑을 넘어 미친 자들의 영혼없는 일성 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인 것 같다. 

답답하다. 녹색평론이나 멀리 제주에서 손으로 책을 만드는 이순호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면, 의식 전환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느나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슬프다.   제주로 내려 가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형표 농부 또한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많이 보아오셨을 것이다.   글 속에서도 그 애틋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수 세기 동안 철저히 기계 문명과 자본 권력에 농락 당한 자연.  헐벗은 자연의 마지막을 부여잡고 그 자연에 자연 자체의 순수함으로 온기를 되살리고 싶은 안간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면서 자신과 싸우고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채소를 키우면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농약에 대한 유혹을 받으면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또 다른 싸움이기도 하다.   농약을 만드는 자본 권력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지배되어 농약으로 생긴 병을 또다시 농약으로 막으려는 약의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악은 끈질기다. 집요하다. 그 유혹의 집요함을 이겨내야 나와 자연의 자연스러움이 생긴다.   그렇게 이겨내는 힘이 우리 옛적 어르신들의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살이다.   저자도 그 주름살을 이마에 새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실패로 이어지는 농부 생활이지만 제주로 옮긴 지 5년이 넘어가는 시간을 아직 견딜만 하다고 하신다. 

바람 많은 제주에 자연 자체의 싱그러움으로 활기를 되찾는 건강하고 시커먼 흙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그 흙 속에서 아름다운 농부로 아름다운 주름을 만드셨으면 좋겠다. 

 


2019. 07. 04. 강골노비. 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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